의무보험 제도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우리나라의 의무보험 범위와 종류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여 과도한 수준이라는데 대한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재난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정책적 취지는 무엇보다 선의의 피해자에 대한 충분한 보상에 있을 것이며, 거시적으로는 거대 재난에 대응한 국민경제의 복원력 확보에서 찾을 수 있다.
재난사고 발생시 재난유발자가 피해자에 대한 재무적 책임을 이행하여야 한다는 것에는 누구나 수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가입 의무화 확대에 대하여는 반론이 없지 않다. 특히 의무가입 부담주체의 경우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을 한다.
그렇다면 사적자치의 원칙이 침해되지 않도록 보험가입을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맡겨 두어야 하는 것인가?
잠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상황을 생각해 보자.
먼저 보험가입이 의무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미한 사고가 발생한 경우이다.
재난유발자는 자신의 경제력 범위 내에서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한다. 다수 경제주체는 피해자와의 법적분쟁을 피하고 배상책임액의 불확실을 해소하기 위해 보험을 통해 위험을 전가하고 있다.
다음으로 거대 재난사고가 발생한 상황을 생각해 보자. 재난피해 규모가 재난유발자의 경제력을 훨씬 넘어서는 수준이 되면, 재난유발자에게 배상책임을 추궁할 수 없게 되는 유한책임의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종국적으로 재난유발자는 파산과 개인회생을 통해 손해배상책임을 면제 받게 되지만, 피해자는 재난유발자로부터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재난유발자는 보험 미가입을 이유로 비난받아 마땅한 것인가? 보험가입이 의무화된 경우에도 보험에 가입하지 않거나 소액의 보험계약을 형식적으로 체결 경우가 다수인 것이 우리의 현실임을 고려하면, 보험가입이 의무화되지 않은 임의보험의 미가입을 이유로 재난유발자를 무턱대고 비난하기도 쉽지 않다.
경제이론에서 합리적인 경제주체는 기대효용을 극대화하는 수준에서 자원을 배분한다고 가정한다. 이론적으로 본다면 손해규모가 자신의 배상능력을 초과하여 파산이 불가피한 유한책임의 상황에 대비하여 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기대효용의 원칙에 위배되는 행위이다.
재난유발자가 자발적으로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 거대 재난으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 구제는 국민의 세금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의 대형 재난사고 처리 방식이었으며, 재난유발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로 인해 동일한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재난유발자 배상원칙이 엄격히 지켜진다면 이러한 문제가 완화될 수 있는 것인가? 실례로 일본의 경우 자전거 사고에 대한 손해배상을 대폭 강화한 결과 자전거로 인한 사고발생이 감소하였으며, 자발적 보험가입 역시 증가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하지만 국민정서와 사회적 관행을 한 번에 개선한다는 것은 쉽지 않고, 오히려 급격한 사회변동에 따른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그렇다고 국민의 세금으로 재난사고에 따른 피해보상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언제까지나 반복할 수도 없다.
이러한 실정이다 보니, 거대재난 발생에 따른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는 잠재적 재난유발자에게 보험가입을 의무화 할 수밖에 없으며, 이를 과잉금지의 원칙을 벗어나는 규제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의 사회적 상황에서 보험가입 의무화는 정부의 개입을 통해 시장실패의 원인을 보정해가는 과정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출처:보험개발원